‘영원히 사는 법’을 가르쳐 준 ‘축구 황제’ 펠레

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. 축구 영웅의 신구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.

펠레는 월드컵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‘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’로 이름을 날렸다. 이미 ‘축구 황제’라는 칭호를 받은 펠레가 하늘 그라운드로 떠났다.

이제 그 빈자리를 ’축구의 神‘ 메시가 차지했다.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. 

마침내 마라도나를 넘어선 ‘레전드’로 마침표를 찍었다.

 하지만 ‘황제’ 펠레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인생 여정은 우리 모두에게 영감과 사랑을 남겨주었다.

​월드컵 통산 최다 우승(3회). 국제올림픽위원회(IOC)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.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로 기억되고 있다.

​그는 타고난 축구의 천재성은 세계를 매료시켰고, 전쟁을 멈추게 한 평화의 사도로, 세계적인 사회적 사업 수행으로 박애정신을 남겨주었다. 

​그야말로 모든 얽힌 난제와 부딪치는 문제의 치료법이라고 믿었던 ‘사랑 바이러스’를 퍼뜨렸다. 이에 그가 남긴 족적과 메시지는 미래 세대에게 유산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.

​그가 남긴 발자취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더없이 화려했다. 하지만 기록과 수상 이력만으로 펠레의 생애를 설명할 순 없다. 

​그는 무엇보다 축구 문화를 바꾸었다. 우리 삶에 있어서 모범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.

​환상적인 테크닉으로 여겨지는 ‘슈팅의 꽃’ 오버헤드킥 구사 , 등번호 10번에 에이스의 권위를 부여한 것도 그가 최초다. 

​상대 수비수의 과도한 밀착 방어와 의도적인 살인 태클을 방지하기 위해 그로 인해 축구 경기에 옐로카드와 레드카드가 도입됐다.

​이전에 축구 경기가 단순히 스포츠에 불과했다면, 펠레는 축구를 예술로, 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. 때로는 ‘펠레의 저주’로 이미지가 일부 희화화됐지만 그는 그라운드 밖에선 평화의 전도사였다. 

​국제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“죽음의 싸움을 멈춰 달라”고 호소했다. 축구계 부패 권력과 맞서 과감히 싸웠다. 유엔 환경 친선대사, 유네스코 친선대사 등도 맡았다.

​특히 펠레는 가난한 사람들, 흑인들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.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족적(足跡)과 영혼의 발자취는 영원하다.펠레는 마지막 임종 전에 “사랑하고, 사랑하고, 또 사랑하라. 

​영원히”라는 유언을 남겼다. 축구로 지구촌 관중들을 매료시켰고, 세상을 좀 더 환하고 밝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영웅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.

​그야말로 펠레는 축구를 넘어 세계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큰 획을 그었다. 이제 대를 이어 축구의 신 메시 시대가 활짝 열렸다. 

​아르헨티나 ‘축구의 영웅’ 리오넬 메시의 얼굴이 벽화와 문신에 이어 심지어 옥수수 농장에 까지 “메시를 경배하라!”는 초대형 초상화가 등장할 정도로 국민들에게 ‘천하무적’과 ‘희망의 상징’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.

​송나라 유부(刘斧)의 <청쇄고의>(青琐高议)에‘长江后浪推前浪(장강후랑추전랑)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. 

​“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”는 뜻이다. 신구세대의 교체를 통해 세상사는 부단한 발전과 전진을 거듭한다는 의미이다.

​장강의 도도한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이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세상의 이치라는 뜻이다. 하지만 “노병은 죽지 않는다.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.”

​펠레는 ‘축구 황제’이자 ‘평화의 사도’로 기억될 것이다. 이를 증명하듯 펠레는 자신의 영면(永眠)장소를 공동묘지의 9층에 자리했다. 

​축구 인생 전성기를 보낸 산투스 FC의 홈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을 선택했다.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칭송받는 이유다.

 비록 펠레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영원히 사는 방법(永生)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. 칼럼니스트 이상기

글쓴이: jugangyopo

파라과이 다이제스트 주간교포, 남미일간동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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